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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람 최초의 북한 인민대학습당에서 강의

조현정이야기

나이 50에 책임질 얼굴 : 더불어 살아온 평가이다.

남한사람 최초의 북한 인민대학습당에서 강의

  • 2000년 여름에 85년부터 친분이 있는 재미교포 한 분이 찾아오셨다
  • 선교차 북한에 갔다가 IT교육과 의료정보분야에 전문가를 추천해 달라고 해서 조사장을 추천해놓고 왔으며, 원하면 북한의 초청장을 받아낼 테니 가서 컨설팅을 해달라는 말씀이었다.
  • 못 할 것도 없다고 했더니, 10월 24일에 입북하는 초청장과 평양을 왕복하는 고려민항의 비행기표가 10월 초에 도착했다. 그때의 심정은 약간의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 해야될 역할, 초청을 한 다른 의도, 뿐만 아니라 비트의 연말실적이 더 중요한 시기여서 방북을 포기하였다. 그러다가 60명의 북한 IT전문가를 대상으로 강의를 바란다는 재요청이 있어서, 1월 말에 입북하기로 정하고서 새로운 비행기표를 받고서 입북절차를 밟게되었다.
  • 입북예정 한 주일 전에 김정일위원장이 중국 상하이의 푸둥지역에 가서, IT에 대한 충격과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 국내외의 뉴스에 크게 다뤄진 직후에 남쪽의 IT전문가가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뉴스는 KBS, MBC, SBS 뿐만 아니라 전 언론에 다뤄졌고, 그후, 1월 30일에 북한에 도착하였다. 누구나 간다는 김일성장군상이나 생가방문 없이 작은 초대소로 안내 되었다. 그곳에서 저녁과 반주를 곁들이며 저녁 9시까지 거의 6시간여를 남쪽의 IT와 벤처, 비트컴퓨터에 대해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설명을 한 것이 그들에게 믿음을 주었던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에 그 날 하기로 된 강의가 하루 연기가 되어, 2월 1일 인민대학습당이라는 곳에서 전문가 500명 대상으로 확대해서 강연을 하도록 위원장의 허락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내에 대강당이 있을 터인데,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교육하고 학습하는 곳에 남쪽의 사람이 몇 십 명도 아닌 500명의 대중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한 것부터가 파격적이었다. 오수용 전자공업성상(한국의 장관급)이 직접한 말로는 “역사적인 일이다. 조총련계 인사조차 인민대학습당에서는 강의한 적이 없으며,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는 더더욱 없다”라며 남쪽의 자본주의자가 강의를 하게된 것에 대한 신뢰의 무게를 하였다. 더욱 신뢰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전에 강의내용을 점검하지 않았으며, 단지 영어를 자제하고 체제비판은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결론은 첫 날 저녁의 대화가 매우 중요한 신뢰를 주었다고 판단이 된다.


  • 당일 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동안 강의한 주된 내용은 우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성장과정과 비트컴퓨터의 업적, 사회 활동을 약 1시간동안 설명하고, 한국 IT의 여러 지표를 보여주면서 발전된 IT산업의 규모를 1시간 설명하고 중간 10분 동안 쉰 후, IT가 변화시킨 각종의 사회현상과 최근 동향의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을 약 2시간에 걸쳐서 설명을 했다. 참석된 이는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조선컴퓨터센터, 평양정보센터, 약전연구소(한국의 전자통신연구소), 과학원, 수학연구소등의 교수들과 책임연구원들이 구성되어 있었다. 약 20%즘 여성이었고, 나이는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IT설명에 영어는 빠질 수 없기에 말은 하고 필요에 따라 설명을 곁들 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비디오 촬영을 했으며, 나중에 당 간부들이 돌려 봤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진지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 IT는 과학이 아닌 시장이다. 따라서 시장을 만들고, 시장에서 원하는 것을 만들어 가야 발전한다.”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한 과학혁명을 오래 전부터 추진 해왔다는 것에 대한 반박을 했다. 지금도 그들은 열심히 뭔가를 개발하고 있으나, 상품성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