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제야에 보신각종을 치다.
조현정이야기
나이 40에 책임질 얼굴 : 네트워크 활동에서 평가된다.
98년 제야에 보신각종을 치다.
- 95년 12월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한 후에, 96년 초에 조순 서울시장을 찾아가 수도서울이 지식산업 기반의 중심도시가 되기 위하여 벤처기업들이 한 곳으로 모이도록 하는 벤처빌딩의 필요성을 메디슨의 이민화회장과 함께 설득을 했다. 경제학자이셨던 조순시장께서 이 점을 빠르게 이해하시고, 강덕기 행정 부시장에게 업무담당을 시키셨다.
법학을 전공하신 강부시장님에게 벤처라는 개념과 신경제의 축이 될 벤처산업의 이해를 시켜드리는 역할부터 협회의 서울시 담당을 내가 맡게 되었다. 강부시장님의 첫 질문이 “벤처기업의 수익률이 높다고 하던데, 그 것은 폭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신기술이나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지식형의 기업들이 고수익일 수밖에 없으며, 벤처기업이 그런 이익을 내기 위하여 고학력의 인재들이 밤낮없이 노력을 한 결과라고 설득을 하고, 또한 이런 기업들은 공해가 전혀 없는 지식을 이용한 기업이므로 수도 서울에 집중시키도록 유인할 필요가 있으며, 은행과 벤처캐피털회사등의 지원기관들이 한 곳에 모여서 이 들의 시너지를 높여야 된다는 것이 우리가 서울시에 주는 정책제안이었다. 결국, 강부시장께서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학여울역 가까운 곳에 4700여평이 시유지가 비어있으니 이 곳을 활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벤처직접시설을 건립 지원할 수 있는 관련법이 없다하여, 97년 7월에 통과시킨 [벤처기업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관련법을 삽입을 했다. 결국, 이 부지를 첨단산업용지로 시의회에서 용도변경을 통과시켜서 3만평의 서울벤처플라자를 건립하기로 하고, 서울도시개발공사에서 설계공모까지 마쳤다.
그러나 97년 11월의 IMF로 인하여 이 계획은 큰 변화를 가졌다. 새로 당선된 고건 신임 시장이 벤처직접시설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새롭게 건립을 할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빌딩을 통째로 임대하여 활용하자고 하여, 역삼역 인근에 있는 아주빌딩을 서울산업재단이 임대하여 중소벤처기업들이 입주하여 저마다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벤처빌딩 설계공모와 아주빌딩의 선정위원으로 역할을 했다. 이 때 서울시 산업국과 시정개발연구원의 관계자들에게 신경제의 새로운 동맥이 벤처가 될 것이라고 인식을 시켰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자들은 인프라 구축에 앞장을 썼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99년부터 확산된 벤처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 1998년에는 월드컵과 벤처가 화두였으므로 차범근감독과 벤처기업을 대표하여 내가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종을 타종하게 되었다고 공문이 왔다. 그 것도 첫 번째로 타종하는 팀이었다. 많은 벤처기업가 중에서 내가 선발된 것은 서울시에 대한 일련의 활동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서울시장, 차범근 대표팀감독, 벤처업계를 대표하여 내가 첫 번째로 타종하게 되었다고 라디오뉴스와 신문에 보도까지 있었다. 새해를 알리는 것이므로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입고 시청에 있는 대기자들의 장소에 도착을 하고 보니, 첫 번째에서 두 번째로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서울시의회 의장이 하기로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명분이 정치에 밀리는 현장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 팀에는 탤런트 오연수씨가 있었다. 다른 팀에는 실질적으로 시민을 대표하는 119구조대원, 환경미화원, 부녀회, 지하철기관사, 학생 등이 있었다. 시청에서 10분전에 버스를 함께 타고 보신각인근에 도착하여, 경찰들이 미리 확보해 놓은 시민들의 틈을 헤집고 보신각으로 올라가서 타종을 해보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의 타종이었지만 많은 생각과 각오를 하기에는 충분한 기회였다. 그 후 ‘서울형 첨단산업지원자문위원’과 ‘서울시산업진흥대책위원(위원장:송병락)’으로 2년간의 봉사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