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에서 창업을 하다.
조현정이야기
비트컴퓨터 창업
호텔방에서 창업을 하다.
- 벤처라면 창고나 차고 아니면 허름한 사무실에서 어렵게 창업되는 것을 연상하는데, 비트는 비싼 호텔방을 임대해 창업을 한 것을 두고 매우 특이하게 여긴다. 1983년 창업을 결정하고서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경쟁력’이다. 충분한 자본과 일류대 출신, 배경 좋은 집안 등등이 바쳐준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본인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대신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나의 유일한 경쟁력으로 삼고 효율성을 높여 승부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평소 학교 다니면서 벌어서 모아둔 450만원의 자본금으로는 사무실 보증금으로 겨우 250만원 정도만이 사용될 수 있었다. 나머지 200만원으로 청계천에서 조립된 애플PC 1대(본인이 평소 사용하던 애플 PC 1대 더 있었음)와 철제 중고 책상 3세트, 전화도 한 대는 필요했다. 팩스는 꿈도 꾸지 못했다. 250만원으로 한 층 규모가 20여 평쯤 되는 성북구 석관동 변두리 사무실의 보증금과 월세 25만원으로 잠시 있었으나, 교통보다는 하루에 일을 할 수 있는 작업환경이 심각했다. 경비인이 없는 빌딩이기에 건물주인이 저녁에 밤샘근무를 하지 못하게 하여 사무실을 열쇠를 잠그고 나와야 했으며, 심각한 것은 냉난방이었다. 에어컨을 살 여유도 없었지만, 요즈음의 모든 에어컨은 분리형과는 다르게 당시의 에어컨은 콤퓨레셔가 내장된 일체형이었기에 창문에 걸쳐 놓으면 무척 소리가 시끄러웠다. 겨울에는 난방을 위해 석유난로를 사용했으나, 켜고 끌 때 발생되는 엄청난 냄새 속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게 하였기에 대책이 필요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줄곧 동대문구 일대에 살았기에 자주 봐 왔던 청량리 맘모스호텔(지금은 청량리 롯데백화점으로 바뀌었음)이 떠올랐다. 1급 호텔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스위트룸을 갖추어야 하지만, 변두리 호텔이기에 그 스위트룸은 1년 내내 거의 비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텔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한다면 밤새워 일을 할 수 있고, 냉난방과 숙소가 해결되며, 소프트웨어개발에 집중을 해도 주변을 신경 쓸 필요 없는 환경에서 적어도 하루에 17시간이상을 일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되었다. 호텔총지배인을 찾아가서 소프트웨어회사임을 설명하고 침대, 소파 모두 필요 없으며, 다른 투숙자들에게 피해 없이 조용히 근무할 테니, 장기 투숙자로 인정해서 빌려달라고 설득을 했다. 그 결과 20평이 넘는 넓은 스위트룸을 Deposit 600만원에 매월 60만원씩 투숙비를 주기로 하고 창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피스텔의 원조가 되다. - 국내의 오피스텔은 1986년에 처음 분양되었으므로 오피스텔의 원조인 셈이다. 이 곳에서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이 짧지 않은 2년 반이나 생활을 하다가 86년에 테헤란로로 옮겼다. 정확히 말하면 오피스텔과는 분위기가 다르고, 2000년부터 소개되는 외국인 전용 임대 오피스텔(휴먼터치빌, 오퓨런스, 코아세스)와 비슷하다. 옮겨가기 직전에는 보증금 1200만원과 월 120만원의 투숙비를 내는 스위트룸 2개를 빌려 사용하기도 했다.
- 호텔방 창업은 상당한 역발상의 결과였다. 많은 이들은 투자도 없이 이익을 내려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그 당시의 역발상은 비용에 비하여 높은 효율성과 숙소까지 해결한 것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새벽 2시에 일을 마치고 바로 옆의 청량리 588(사창가) 입구에 있는 단골 식당에서 야참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 후에 잠을 자는 재미도 있었다.
